나르시즘 성격장애

---김종만의 저서 "왕따에서 자폐까지"(2003, 139p-145p)에서 인용---

일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로 왕자병, 공주병에 해당되는 말이 나르시즘이다. 나르시즘은 영어의 narcissism에서 온 말로 프로이드에 의해서 1910년에 정신 의학에 등장하였다. 이후에 프로이드의 제자인 오토 랭크(Rank)에 의해서 정신분석학 연구 논문집에 나르시즘이 소개되었다. 1914년에 프로이드의 나르시즘에 대한 연구가 출판되었고 프로이드는 나르시즘 환자가 치료 효과가 미약하고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다. 1925년에 웰더(Waelder)에 의해서 나르시즘 성격이 소개 되었고 1982년에 아크타(Akhtar)와 톰슨(Thomson)나르시즘 성격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학자들의 나르시즘 연구가 본 격화 되었다(Chessick, 1985).

 나르시즘이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우스(Narcissus)의 이야기에서 프로이드가 따 온 용어이다. 나르시우스는 신의 노여움으로 목소리를 잃고 남의 말을 흉내만 내는 요정인 에코(Echo)의 사랑을 거부한 죄로 벌을 받아서 거울처럼 맑은 샘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으로 자신 이외에는 누구와도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정신분석학에 등장하였다(김종만 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 431페이지 참조).

 나르시즘은 자긍심의 일부로 자아에 필수적이라고 정신분석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건강한 나르시즘 발달 과정을 살펴 보자. 출산 후 아기는 6개월에서 9개월이 되면 엄마를 알아보게 된다. 이때부터 엄마에 매달린다. 엄마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새겨진 것이다. 이 시기에 아기는 엄마와 하나됨을 느낀다. 엄마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기고, 서고, 걷게 되면서 아기는 엄마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시기가 1 3세 정도가 된다. 자아의 감각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 기간에 나르시즘이 피크가 된다. 엄마에게 이것을 해달라, 저것을 해달라고 보채게 되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아기는 부모님이 자신의 욕구를 들어주는 것을 자신이 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마치 이 세상이 자신의 것처럼 느끼게 된다. 정신분석학자인 코호트(Kohut)는 이것을 너와 내가 하나된 자아 즉 selfobject라고 부르고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자인 위니코트(Winnicott)는 이것을 아기에게 전지전능하게 느껴지는 엄마로 부르고, 몰러(Mahler)는 이것을 엄마와 아기의 하나됨(symbiotic phase)으로 기술하고 있다. 코호트는 이것을 거품 자아, 혹은 과대 자아로 불렀다. 이 시기에 과장된 자아는 아기의 진실된 자아가 아니고 엄마의 힘을 빌린 자아이기 때문이다. 1.5세 때 엄마의 자아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전지전능한 부모의 이미지는 자아 이상(ego-ideal)로 변해서 3 5세 사이에 초자아에 합쳐지게 되고 과대 자아 혹은 거품 자아는 자아(ego)에 통합되어 큰 자아로 자아의 확대가 일어난다. 부모가 제공하는 최고 적합한 좌절과 실망을 경험하게 되면서 아기는 자신의 한계를 하나씩 수용하게 된다 즉 오디팔 단계인 3 5세 때 아기는 혼자서 환경을 마스터하기 위해서 주변 환경의 컨트롤을 경험하게 되면서 스스로 하는 일이 하나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대신에 부모님은 못하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어 이 세상에서 자신은 하나의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내가 최하라는 인식으로 나르시즘이 최하가 된다. 이 시기에 부모님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부모의 동일시가 일어나게 된다. 남자는 아버지를 동일시하여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고 여자는 엄마를 동일시하여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 어머니처럼 되고자 한다.

 1 3세 사이에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감정 조율에서 오는 마술적인 힘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나르시즘에 상처를 입게 된다. 부모로부터 처벌, 불인정은 부모의 이상화에 대한 실망으로 연결되고 이후에 어른이 되어 이상적인 대상을 끝없이 찾게 된다. 손상된 자아 역할을 보상하기 위해서 이상적인 인물에 매달리게 된다. 발달 지연, 발달 중지로 자아의 큰 형태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아기의 욕구를 거울처럼 비추어서 만족 시켜 주지 못하고 아기가 부모의 욕구를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부모의 감정적 욕구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나르시즘에 상처는 과대 자아 혹은 거품 자아가 자아(ego)에 통합이 되지 못하고 거부된 부분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고 본다. 자아의 발달이 통합이 일어나지 못하고 조각이 나서 분열되어 있다고 본다. 나르시즘에 상처를 받은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나르시즘을 영원이 충족 시켜줄 이상적인 대상을 찾게 되고 그 대상으로부터 하나가 됨으로써 자신의 자아는 마술적인 힘, 마술적인 보호를 얻게 된다. 이것은 대인관계의 파괴로 연결된다.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서 충족되지 못한 나르시즘적 욕구를 완성 시키려는 목적에서 온 것이다. 신과 같은 이상적인 부모와 마술적 항병을 하려고 한다. 인정 받고, 보호해 줄 이상화 된 부모 이미지를 끊임없이 찾는다. 외부로부터 칭찬, 존경, 인정으로 자긍심을 채워서 유지해 가게 된다. 외부에서 자긍심의 에너지를 공급받으려고 한다. 외부에서 자긍심의 에너지 공급 지연, 중단은 자긍심의 붕괴로 연결된다. 전지전능한 상상으로 자아를 방어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보호해 주지 못했으니까 내가 상상으로 보호하겠다는 방어에서 온 것이다. 전지전능함을 포기하지 않고 2세 때의 나이로 퇴행하는 것이다. 컨버그(Kernberg)는 나르시즘의 발달 고착으로 생긴 부모의 이상화의 빈 공간을 채우려고 시도하는 것이 과장된 인플레 된 자아라고 본다. 나는 내 이상대로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거부될까 두렵다. 그러나 내가 만약 이상적인 사람과 내 자아가 하나가 되면 더 이상 누구를 사랑하고 관계할 필요가 없다. 고로 이상적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 좋다(Kernberg, 1984). 전 생애를 자신이 거부된 부분과 탐욕적 부분을 자신으로부터 감추는데 보낸다. 자신을 비판하거나 결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적(), 원수가 된다. 자신을 특이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오는 고통, 자신을 숨기는 것에서 오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된다.

병적인 나르시즘 자아의 특징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             칭찬, 인정에 목말라 한다.

-             이상적 대상을 끝없이 찾는다. 이상적 대상을 자아의 확대로 본다.

-             대상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똑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             외부 대상을 마술적인 완벽한 사람으로 본다. 과대 평가를 한다.

-             외부 대상이 완벽함을 보이지 않으면 실망으로 평가절하를 한다.

-             공감 능력이 없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             (), (), 권위(power)에 매달린다. 만족의 끝이 없다.

-             내면적으로 자아 만족이 없다.

 정상인의 경우에는 실제의 만족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성취, 목표의 달성을 통해서 내면적 만족, 즐거움을 얻게 되지만 나르시즘 환자는 외부 인물로부터 인정을 원하기 때문에 항상 공허하고 자긍심이 낮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대리물로 보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파괴된다. 다른 사람을 모두 자신의 똘만이(부하로)로 보기 때문에 상호관계가 파괴 된다. 굶주림, 좌절 때문에 자아의 핵심에는 무기력, 분노, 공격과 파괴, 미움과 공허감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이것을 외부 대상에다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공허, 분노, 공격을 받을까 두려움이 나타나서 외부 세계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시절에 차가운 엄마, 집중적인 공격적 엄마, 무관심, 말이 없고 경멸적이고 공격적인 엄마 밑에서 자란 어린이는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 집중적인 미움과 질투를 방어해야 한다. 고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 찬사를 불러 일으킬 자질, 신체적 매력, 야심, 재능 등을 이용하여 찬사, 우수함, 칭찬으로 스스로를 보상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납작한 자긍심을 방어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존경, 찬사에 매달리는 것이다. 미움, 질투, 착취, 좌절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된다.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칭찬, 찬사에 목이 메이는 자기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모순을 해결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존 상황은 어린시절의 위협적 상황을 되살리게 된다. 뛰어난 사람을 영웅으로 존경하고 의존 관계를 가지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다. 실제 내면적으로는 그 사람을 자아의 확대로 본다. 그 사람이 나르시즘 환자는 거부하면 비판을 하면 미움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 사람을 가차없이 매도하고 평가절하해서 그 사람과 적이 된다. 결국은 대인관계가 망가진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친밀 관계를 가질 수가 없게 된다. 공감과 쌍방관계가 파괴 되었기 때문이다. 환자는 질투 감정을 방어하기 위해서 대상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평가절하 하게 된다. 거기에서 오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대상에게 더욱 매달리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 된다. 

컨버그(Kernberg, 1984)는 나르시즘 환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이 없다. 요정 에코(Echo)의 애절한 사랑에 아무 감각이 없었던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우스가 이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             가족, 친구,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 못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친구를 이용해도 상관 없다. 우정은 단지 이익이 있을 때만 필요하다.

-             존경, 칭찬, 각광을 받기 위해서 일하고 존재한다. 비평에 모욕, 수치심으로 반응한다. 비판을 받으면 분노, 수치심,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 무제한의 성취, (), (). (power), 이상적 사랑에 환상적으로 집착한다.

-            일 벌레이다. 가족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불평, 불만에 아랑곳 없다.

-             성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즐거움이 없다. 내면 속은 항상 공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일부 성공했다고 해도 야심은 결코 만족 될 수 없다.

-             칭찬, 존경을 받지 못하면 우울하다. 칭찬, 매력이 굶주려 있다.

-             자아가 항상 인플레 되어 있다. 로맨틱한 관계는 오로지 자신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            대인관계가 어렵고 항상 외톨이로 느낀다. 중년기로 갈수록 우울해진다.

-             자신보다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한 끝없는 질투한다. 자신의 결함은 거짓말이나 합리화로써 정당화 시키려고 한다.

미국 정신 의학 학회에서 출판한 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집인 DSM-1V(1994)에 나르시즘은 성격장애 속에 분류되어 있다. DSM-1V는 나르시즘 성격장애의 진단 기준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아래의 증세 중에 적어도 5개 이상에 해당 되면 나르시즘 환자로 진단한다.

 1). 비평에 분노, 수치심, 모욕감으로 반응 한다 (본인이 직접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2). 대인관계가 잘 안 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3). 자아의 중요성이 과장 된다. 성취, 재능을 과장, 적당한 성취가 없는 대도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4). 자신의 문제는 특별함으로 단지 특별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5). 무제한의 성취, (power), (), 이상적 사랑에 환상적으로 집착 한다.

6). 특별한 대우를 기대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대우를 요청한다.

7). 관심과 존경의 지속적 요구를 한다. 칭찬에 목말라 있다.

8). 공감이 부족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경험하는지를 인정할 능력이

부족하다.

9). 질투심에 집착한다.

나르시즘 환자의 사례 분석

환자: 42세의 중년 부인

진단명: 나르시즘 성격장애

치료: 2회 씩 1회에 2시간으로 6개월 동안 심리치료

결과: 치료에 실패한 케이스

환자 K부인은 결혼 기간 18년으로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1학년 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둔 주부 였다. 부인은 남편과의 심한 갈등으로 3 개월 전부터 새벽녘에 목이 졸리는 증세를 경험함으로써 정신과를 찾았고 1달 가량 약물 치료를 받다가 치료자에게 심리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분석 결과 심한 나르시즘 환자로 진단 되었다.

이상적 대상에 끝임 없이 매달린다. 부인 K는 고등학교 때 자신의 담임 선생님이든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사랑으로 연결 되었다. 이후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5년 동안 열애 끝에 결혼을 하였다. 남편은 여고에 부임 당시 대학원을 졸업한 햇병아리 교사 였다. 남편은 부인보다 10살이 많았다. 결혼 초 4년 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부인은 남편을 하늘 같이 떠 받들고 모셨다고 했다. 이상적인 대상에 의존적인 나르시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부인은 고졸이고 남편은 명문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교사 였다. 부인은 학생이고 남편은 교사였다.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과 사랑이 함께 한 것으로 부인에게 남편은 하늘 같은 존재 였다.

대상을 자신의 자아 확대로 본다. 부인 K는 남편과 결혼을 함으로써 적어도 결혼 초반기에는 자신의 부족한 나르시즘을 충족 시킬 수 있었다. 남편의 자아를 자신의 자아 확대로 본 것이다. 부인의 어린시절을 분석한 결과 부인은 1살 때 어머니가 이혼을 하고 집을 나가버렸고 4살 때까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다가 아버지가 재혼을 함으로써 양모 밑에서 자랐고 이복 동생이 3명이 태어남으로써 항상 자신과 동생들에 대한 양모의 태도가 달랐다고 이야기했다. 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자라 사랑에 목이 말라 했다고 부인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나르시즘에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충족되지 못한 나르시즘을 담임이었던 남편과 결혼 함으로써 자신의 자긍심을 들어올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결혼 초반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치료 초기에 부인은 치료자를 이상적인 치료자로 100% 완벽한 능력을 갖춘 치료자로 보고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치료자가 부인 자신에 대한 치료 과정에서 나온 분석을 시 아버지나 시숙에게 마치 자신의 지식인양 이야기하는 통에 심리적 지식에 정통하고 박식한 사람으로 비춰져서 시숙들이 부인의 해박한 심리적 지식에 놀랬다는 것을 시숙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치료자를 자신의 자아 확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결혼 초기에는 남편을 자신의 자아 확대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치료자를 자신의 자아 확대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상을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100% 완벽한 사람으로 본다. 부인은 결혼 초반기 4년 동안을 남편에게 헌신과 희생적인 내조를 보였다고 스스로 술회하고 있다. 남편이 점심을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매일 같이 점심 도시락을 만들고 찬합에다 반찬을 가득 담아서 직접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갖다 주었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을 5년 동안이나 했다고 하였다. 결혼 후에 자녀가 태어 한 후에는 아기는 등에 업고 한쪽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다른 손에는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매일 같이 점심 시간에 학교에 남편의 점심을 손수 갖다 주었다. 남편의 사양에도 아랑곳 없이 부인으로서의 정성을 보여야 한다며 남편에게 헌신한 것을 자랑으로 이야기 했다.

칭찬, 찬사에 목말라 있다. 부인이 남편에게 점심을 배달한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남편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에서 나온 행동이었지만 내면적으로 보면 남편으로부터 칭찬, 찬사 그리고 남편의 동료 교사들로부터 칭찬, 찬사를 받고 싶어하는 부인의 나르시즘적 욕구에서 나온 것이었음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결혼 5년이 지나면서 부부사이에 갈등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인은 남편에게 내가 당신에게 한 것처럼 지극 정성으로 대한민국에서 남편에게 봉사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봐라고 남편에 늘 다그치며 나는 그렇게 당신에게 내 모든 정성을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느냐?고 따지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대상을 내 자아의 반쪽으로 보고 있다. 대상과 상호관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남편인 대상에게 내 생각과 왜 일치하지 않느냐? 내가 슬플 때 나의 슬픔을 같이 하지 않고 왜 당신은 웃고 있는가? 로 부인은 남편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는 빈도 수가 점점 증가 하였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고 언제나 부인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면서 남편을 처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부인은 자랑 삼아서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다 신경을 썼다고 했다. 남편이 아침에 학교에 출근을 할 때 부인은 오늘은 넥타이를 붉은색으로 메고 바지는 청바지를 입고, 상의는 잠바를 걸치고 신발은 운동화를 싣고 등으로 남편의 옷차림에 간섭을 했다고 자랑했다. 남편의 머리 스타일, 옷 차림, 양치질, 목욕까지 일일이 간섭을 했다고 자랑했다. 남편은 치료자의 상담에서 부인의 잔소리, 간섭 때문에 내 자아는 없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옷차림을 입고 가면 하루 종일 부인은 그것을 꼬투리 삼아서 전소리를 하고 못살게 했다.고 불평했다. 부인이 원하는 자아를 가진 사람은 부인 자신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 없다. 자신의 반쪽을 대상에 거울처럼 비추어서 보고 있고 그것을 남편에게서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의 자아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고 부인의 욕구대로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에게 실망을 느끼면 100% 나쁜 사람으로 매도한다. 부인은 연애 기간과 신혼 기간까지는 남편을 완벽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오는 갈등과 실망은 남편을 장점이 없는 단점만 가진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부인은 자신이 왜 남편과 같은 사람과 결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이 장점이 없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치료자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서로가 선택한 결혼이었는데 왜 지금은 단점만 가진 사람과 결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모순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부인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남편이 자신을 이용한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속임수로 속였다고 생각하고 분노해 했다. 대상에게 매달리다가 대상의 단점이 하나씩 발견되면 실망하고 대상을 100% 단점만 가진 사람으로 평가절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의 장점들이 이제는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감정이 너무 빨리 변해서 변덕적이다. 남편은 부인이 너무 빨리 기분이 급변하기 때문에 부인의 기분을 맞출 수 없다고 불평을 했다. 부인은 내면에 엄청난 분노와 적대감정을 억압하고 있었다. 이 적대 감정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양육 과정에서 차별 대우를 한 양모, 결혼 후에 결혼 초기에 자신에게 섭섭하게 해 준 시어머니 그리고 지금은 자신에게 사랑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는 남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친 어머니와 아버지, 양모에 대한 양육 과정에서 억압된 분노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로 엎질러지고 있는 것임을 부인은 모르고 있었다. 결혼 때 양모에게 예단으로 고급 한복을 한 벌 마련해서 양모에게 주려고 했으나 양모에 대한 적대감정 때문에 일하는 가정부에게 주었다고 실토하면서 고소해 했다. 같은 대상이 조금 전에 천사에서 지금은 악마로 급변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성모 마리아가 되었다가 지금은 창녀로 변하는 것에서 감정의 변덕을 볼 수 있다.

내가 최고이다. 부인은 자신에게 잘못이 하나도 없고 남편에게 100%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잘못은 시어머니와 남편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이야기했다. 자신은 남편에게, 시어머니에게 온갖 정성으로 모시고 섬기지만 상대는 그것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매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편은 외모가 잘 생기지 못했다. 대신에 부인은 미인이었다. 누가 보아도 자신이 미인이라고 칭찬한다고 했다. 부인 자신의 말대로 부인 K는 삼류 잡지에 표지 모델의 제의도 있었다고 했다. TV에 리포트의 제의도 있었다고 자랑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레를 배우려고 학원에 다니려고 했으나 양모의 반대로 꿈이 좌절 되었다고 양모에게 분노했다. 항상 자신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관계를 망가뜨리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단점을 지적하거나 비판을 하면 적()이 된다. 6개월 동안에 내면 속에 억압된 감정을 방출 시키자 부인의 목 졸리는 현상은 사라졌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면서 치료의 초점이 부인의 나르시즘적 욕구 상처로 모아지고 부인의 단점을 수정하려고 시도하면서 부인은 치료를 중단하고 말았다. 심리치료에서 나르시즘 환자의 치료가 가장 어려운 치료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나르시즘 환자들이 자신의 단점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 부인은 치료자에게 진실로 자신의 자아 결함을 수정 받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남편이 틀렸고 부인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인정 받기 위해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대인관계가 파괴되어 있다. 부인은 남편과의 관계가 파괴되어 있고 친구 관계가 없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자신을 따라다니는 동료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부인 자신의 외모 때문에 친구들이 가까이 하려고 한 것이었지 부인 자신이 마음을 열고 친구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결혼 후에도 부인은 친구들과 관계가 없었다. 동료들과 만나서 결혼 생활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대인관계의 특성이 쌍방 관계이다. 서로 상호 공감하고 상호 존중으로 상대를 인정해야 상대도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나르시즘 환자의 특징이 공감 능력이 없다. 상대를 내 이익에 따라서 이용하는 것 뿐이고 상대를 배려하거나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망가지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