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창설자인 프로이드는 정신분석학을 신경증 환자의 치료 기법으로 고안을 했다. 그러나 그가 1894년부터 1937년까지 정신분열증을 신경증처럼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위해서 40년간을 고전분투했으나 결국은 이루어내지 못했다(Ogden, 1994).

 프로이드는 초반기에는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이 양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고 연구를 해 나갔다. 1894년 1910년까지 프로이드는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을 일직선 상으로 같은 종류의 장애로 보았다. 한쪽에는 신경증이 있고 그 극단적인 반대 쪽에는 정신분열증이 있다고 보았다. 즉 같은 종류의 장애로써 서로 양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본 것이다. 오디프스 콤프렉스 기간 즉 오디팔 기간에 고착이 일어난 것이 신경증이고 오디팔 이전의 기간 즉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는  autoerotic 기간에 고착이 일어난 것이 정신증으로 보았다. 신경증 보다 갈등이 극심한 것이 정신분열증으로 보았다. 소망 성취, 욕구의 박탈이 극단적으로 생긴 것으로 정신분열증을 본 것이다.

 그는 1897년에 정신증을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으로 분리 시키고 정신분열증은 어린 시절에 고착이 일어난 것으로 편집증은 투사 방어로 구분을 했다. 전자는 쪼갬 방어, 억압 방어가 우세하고 후자는 쪼갬 방어와 투사 방어가 후세한 것으로 ego의 상황과 방어의 종류의 차이점으로 구분을 했다.

 이후에 1911년부터 그는 정신분열증을 신경증과는 완전히 종류가 다는 질적으로 신경증과는 다른 정신장애로 보고 연구를 계속했다. 정신분열증은 ego의 변종으로 신경증의 ego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보았다. 정신분열증의 ego는 리비도 에너지가 대상으로부터 철수해서 자신의 자아 쪽으로 흘러가서 세상과는 단절해 버리는 것으로 세상을 포기하고 내면으로 철수해 버리는 것으로 보았다.

 15년 후에 1926년에 다시 ego의 변종 이론은 심리적 에너지를 포기한 쪽으로 흘러갔다. 이후에 다시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의 통합 이론을 시도했으나 끝내 성공을 하지 못했다(Ogden, 1994).  

 이후에 정신분석학자들은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가 두 개의 학파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정신분석 학자인 론돈(London)은 전자를 정신분열증 연구의 일반 이론과 후자를 특수 이론으로 구분을 했고, UCLA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그로트스테인(Grotstein)은 전자를 갈등 이론으로 후자를 결함 이론으로 이름을 붙여서 구분을 했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서 갈등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프로이드의 초반기 이론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 정신분석 이론을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는 학자들로써 이들은 갈등 이론을 바탕으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이론을 개발해 나갔다. 즉 욕구의 갈등, 소망 성취의 좌절이 극심한 것으로 내면 갈등 때문에 리비도 에너지가 대상으로부터 내면 자아 쪽으로 철수한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발생 비율이 사춘기에 주로 일어나는 것으로 사춘기까지의 발달은 정상적으로 발달하다가 이후에 퇴행을 거듭하게 되어 어린 유아기로 퇴행해 버린 것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병이 만성적으로 변해가면서 점점 유아처럼 퇴행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치료에서도 이들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그대로 적용해도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큰 문제가 없다는 학자들이다.

  이들 학자들 중에 대표적인 정신분석 학자들은 알로(Arlow), 브레너(Brenner), 파오(Pao), 큐비에(Kubie), 특별히 대상관계 이론을 정신분열증 치료에 적용하고 있는 최근에는 보이어(Boyer) 등이 있다,

 반대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결함 이론을 강조하는 정신분석 학자들은 유아기 시절에 양육의 박탈로 생긴 ego에 결함 때문에 이후에 발달 단계에서 결함들이 누적되어진 것으로 본다. 이들은 자폐증과 정신분열증 어린이들의 치료 연구에서 초반기에 엄마와 아기 사이에 하나됨에서 생긴 결함이 결정적인 것으로 강조한다. 자폐증 어린들이 외부 대상 즉 엄마와의 하나된 관계에서 오는 실망 때문에 대상의 세계, 외부 세계로부터 등을 돌려 버린 것으로 내면의 세계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는 캡슐에 갇힌, 마음에 블랙 홀을 가진 것을 강조한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서 결함 이론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 기법으로는 정신분열증 환자는 오히려 증세가 완화되는 것이 아니고 증세가 심해져서 환자가 악화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고로 정신분열증 환자나 보드라인 환자들, 성격장애 환자들을 치료할 때는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응용해서 환자에게 치료의 방향을 선택하도록 하고 분석가는 중립적 위치에서 환자의 리더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분석가는 능동적이어야 하고 분석가가 환자의 리더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고로 이들은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라는 이름 대신에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라는 이름이나 "집중적 심리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결함 이론을 강조하는 정신분열증 치료를 하는 정신분석가들은 론돈(London), 웨슬러(Waxler), 프리맨(Freeman) 등이 있고 아르에티에(Arieti), 컨버그(Kernberg), 코호트(Kohut), 실(Searles), 지오바치니(Giovacchini), 발칸(Volkan) 등이 있다(Ogden, 1994).

 컨버그(Kernberg)는 특히 그가 메닝거 크리닉(Menninger Clinic) 치료센터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장기간 5년-6년간 치료를 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그는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사용한 그룹과 감정 지원적인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사용한 치료 그룹과 표현적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사용한 치료 그룹을 비교한 결과 치료 효과가 가장 좋았던 그룹이 표현적인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사용한 그룹이었고 그 다음에 감정 지원적인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사용한 그룹이었고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사용한 치료 그룹은 오히려 치료 효과가 나빠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증세가 개선되어지지 않고 더 악화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표현적 치료 기법과 감정 지원적인 치료 기법은 고전적 정신분석 치료 기법을 응용하고 개선해서 정신분열증 환자나 보드라인 환자들의 치료로써 사용하고 있는 치료 기법이다(Kernberg, 2002).

 1960년 이후에 정신분열증과 심한 성격장애 즉 보드라인 환자들의 정신분석 치료에서 결함 이론을 지지하는 분석가들이 우세했으나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 학파인 비용(Bion)의 투사 동일시의 개념의 확대로써 갈등 이론이 새로운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재 등장하게 되었다(Ogden, 1994).

 비용(Bion)은 결함 이론들이 자폐증, 어린이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치료 이론에서는 이론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지만 사춘기까지는 왜 정상적인 발달을 한 이후에 퇴행으로 발달이 거꾸로 되는가에 대한 확실한 이론적 바탕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용은 (Bion)은 이런 이론적인 미약한 부분을 그의 "자아 파괴적 이론"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하고, 이미지화 하는 심리적 기능들을 스스로 파괴 시켜 버린다. 심리적인 기능 즉 ego의 기능은 감각되어진 데이트를 느낌, 생각, 이미지, 상상으로 바꾸어야 생활에서 이것을 응용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냥 감각적 데이터로써 남아 있느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즉 삶에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원시적인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베타(beta) 요소라고 불렀다.감각적 데이터인 베타(beta) 요소들이 알파(Alpa)요소로 바뀌어야 즉 느낌, 생각, 이미지, 상상들로 바뀌어져야 이것을 삶에서 마스터 감각을 경험하는데 사용할 수가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오가덴(Ogden, 1994)는 비용(Bion)의 연결에 대한 공격 이론으로써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정상발달을 거친 다음에 퇴행으로 어린시절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비용(Bion)의 연결에 대한 공격 이론- 비용은 심리적 그룹의 기능을 알파 그룹이라는 용어로 제시하였다. 이 심리적 기능의 그룹이 감각적인 인상을 심리적인 의미로 바꾸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본다. 심리적으로 조직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형태 변화의 감각적 인상은 의식과 무의식 사고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바뀌지 않은 감각적 인상은 그룹 사이에 물건으로 취급된다. 소화되지 않는 사실로써 저장이 된다. 기억과 반대가 된다. 이것은 다른 것들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 소화되지 않은 감각적 인상은 경험을 이루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감각적 인상에 이 힘이 더 붙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감각적 인상이 심리적인 상상으로 바뀐 후에 지각이 의미 깊은 경험이 된다. 의식과 무의식적 사고 과정에 접촉이 된다.

 예를 들어서 상상에 형성, 꿈이나 방어적 작동 1차 사고 과정과 2차 사고 과정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만약 감각적 모양이 상징으로 바뀌지 못하면 의식과 무의식적 생각도 없다. 기억도 없다, 지각된 것을 배울 능력이 없다. 이 소화되지 않은 감각 데이터 즉 소화되지 않는 감각적 인상을 투사 동일시를 통해서 감각적 증액을 제거하기 위해서 추방이라는 수단으로 다룬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투사 동일시의 수해자라는 사람이 유용하게 필요하다.

 이 소화되지 않은 감각적 데이터는 치료자가 이것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해서 환자에게 다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돌려줄 필요가 있다. 비용(Bion)은 이 가설을 엄마가 유아의 원시적 감각을 데이터를 처리할 능력이 있어야 유아는 이 원시적 감각 데이터를 처리할 능력을 배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유아는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게 된다. 엄마가 이러한 투사 동일시의 형태를 컨테이너 할 능력이 없으면 생각과 느낌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은 파괴해 버린다.

 비용(Bion)은 투사 동일시가 엄마와 아기를 연결하는 1차 형태로 보았다. 유아의 투사 동일시를 컨테이너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의 거부는 이 연결에 공격으로 지각된다. 엄마의 거부는 유아의 느낌과 지각, 부인의 형태를 띈다. 유아의 투사 동일시를 컨테이너 하기를 엄마가 거부하면 유아의 느낌과 생각을 박탈해버린다. 유아가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의미를 박탈해버린다. 이 연결을 공격하는 엄마는 내면화 되어지고 유아 반응의 모델이 된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유아는 이후에 자신의 내면 연결 과정을 공격하게 된다. 경험을 창조할 지각과 생각 능력을 파괴시켜 버린다.

  비용(Bion)에 의하면 생각할 수 없는 욕구를 개발하기 보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투사 동일시의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용(Bion)의 결론은 치료 관찰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투사 동일시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비용(Bion)은 어떤 세트를 기술하고 그 세트 안에서 경험을 창조할 능력과 생각을 창조할 능력을 공격하는 것으로 엄마와 아기 사이에 1차 연결 즉 투사 동일시를 중재할 마음의 능력을 공격했다. 그러나 투사 동일시는 물리적 도구가 아니다. 대상관계를 동반하는 상상의 세트이다. 여기에서 사고 과정의 공격은 상상의 능력에 대한 공격이다(Ogden, 1994).

 비용(Bion)의 투사 동일시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응용해서 오가덴(Ogden, 1994)는 이것을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갈등 이론의 보완으로 사용해서 만성적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으로 고안해서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오가덴(Ogden, 1994)의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기법과 치료의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가덴(Ogden)은 예일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여 정신분석 학자가 된 사람으로 샌프란시스코 의과 대학에서 정신과 교수와 정신분석학자로써 연구와 치료를 계속하다가 지금은 은퇴해서 샌프란시스코 정신분석학교에서 교수와 샌프란시스코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 치료 연구소에서 소장으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와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로써 "마음의 모체"(1986), "투사 동일시와 치료 기법"(1994), "정신분석의 예술"(2005), "꿈 개척지에서 대화"(2001), "몽상과 해석"(1997), "분석의 주체: 제 3 의 분석"(1995) 등의 저서가 있다. 위의 그의 저서들은 번역되어 있어서 구입할 수 있다. 그의 저서를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의 전문서적 안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오가덴(Ogden, 1994)은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자아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삶에서 마스터 감각을 경험해 나갈 수가 없다. 그들은 생각이 없는 소용돌이의 혼란에 빠져 있다. 그들은 느낌이 없다. 생각이 없다. 상상이 없다. 이미지화를 할 능력이 없다. 자아의 고통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해 버린다. 경험을 기술하고 분류할 능력이 파괴되어 버린다. 그들은 경험에서 배울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그가 느낀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파괴시켜 버린다. 이유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UCLA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그로트스테인(Grotstein)은 비용(Bion)의 이론을 확대 시켜 정신분열증 환자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예민함 때문에 그리고 지각 결함 때문에 지각의 위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심리적 기능을 약화 시켜서 자아를 보호하려고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괴적 소망과 충동 때문에 지각을 미성숙하게 방출 시켜 버린다. 고로 심리적 기능이 취약하게 되어 버린다. 과도하게 미성숙한 방어가 되어 버리게 된다. 이 미성숙한 방어는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도로 본다.

 그로트스테인(Grotstein)은 사고 과정을 파괴 시키는 것을 가리쳐서 "선택적 지각"이라고 불렀다. 자신에게 위험한 지각은 스스로 파괴 시켜서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이미지화 하는 과정을 파괴 시켜 버린다. 감각 데이터를 의미로 바꾸는 과정을 스스로 파괴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단순히 무엇에 대해서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다고 오가덴(Ogden, 1994)은 강조한다. 그로트스테인(Grotstein)은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괴상한 대상 형성을 개념화 했다. 사고 이전의 불구가 된 사산된 사고, 죽은 사고들을 대상에 투사해서 그것을 재 입사한 것이 그들의 괴상한 사고들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오가덴(Ogden, 1994)은 비용(Bion)의 경험과 아이디어에 대한 파괴적 공격 이론을 도입해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새로운 치료 기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을 해서 생각, 느낌, 상상, 이미지 화를 없애 버려서 상징화을 할 능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무감각하고 로봇처럼 감정이 없고 기계나 물건처럼 변해 버렸다고 강조한다. 고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4단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 1 단계: 무감각의 단계

 이 단계에서는 감정이 없는 물건으로 된 무감각한 상황이 특징이다. 느낌의 세트, 상상의 세트, 이미지의 세트, 상징화의 세트 등으로써 이루어진 심리적 기능이 고통 속에서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갈등을 초래한 외부 대상에 대한 분노와 공격으로 이런 심리적 기능을 보존하려고 하는 능력과 대상에대한 분노, 공격, 적대감정 때문에 서로 양립을 하지 못하고 파괴시켜 버린 과정에 있는 사람이 만성정신분열증 환자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무감각하고 무경험적이고 마음 속에서 심리적 기능이 없는 마음의 블랙 홀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치료사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심리적 기능을 생산하는 능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치료의 초반기 단계에서는 해석은 아무런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이 치료의 단계에서는 환자에게 접근해서 환자의 주의 관심을 끌어내는 단계이다.

 이 초반기 첫 치료 단계가 몇 달에서 몇 년을 가는 수도 있다. 치료사의 눈에 띄는 것은 좌절과 분노의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보채고 매달리는 것이 없다. 구분을 할 수 없는 무차별의 망각 상태 그대로 이다. 치료사가 이런 환자들 한데서 느끼는 것은 늘 똑 같다. 지루함의 느낌이 잦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지루함은 아니다. 치료사는 이런 환자들 한데 호기심과 흥미를 보이고 싶지 않음을 느낀다. 치료사의 눈에 띄는 것은 좌절과 복수의 상상의 느낌도 없다.

 이 단계에 있는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는 그의 벙어리 수준이다. 이 단계에서 IQ는 정상적인 수준에서 거의 백치 수준인 50-60사이로 곤두박질 친다. 병원 입원에 대해서도 격렬한 반항을 보이거나 저항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환자는 내면의 무감각에 대해서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지 않는다.

 치료사는 이러한 무감각에 자극을 불어 넣어서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불어 넣어야 한다. 치료사가 환자를 돌보아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환자가 느끼게 하고 반응을 보이기 끄집어내게 한다. 환자의 존재 감각에 의해서 치료사는 부인되어짐을 느낀다. 치료를 해주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음을 느낀다. 느낌이 없는 로봇과 같이 느껴진다. 치료사가 하라는 대로 그냥 앉아 있다. 치료사에게 질문이나 코멘트를 하거나 요구를 하지 않는다. 치료사가 일반적인 질문을 했을 때 "병동의 TV에서 하는 야구에 흥미가 있습니까?" "새로운 흥미 있는 것이 있습니까?" 등의 질문에 반응이 없다. 침묵으로 남아 있거나 어깨만 움추릴 뿐이다. 그냥 무기력 하게 앉아만 있다. 어떤 것에도 흥미와 호기심이 없다. 치료가 1년 정도 지나가면 환자가 호기심을 보이는 단계가 된다. 망상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이 제 1 단계이다. 핵심은 모든 경험이 감정적으로 똑 같다는 방식을 말한다. 좋고 나쁜 것이 없다. 모두가 똑 같이 느껴진다. 모든 물건, 사람, 장소와 행동은 감정적으로 서로 뒤섞여 바뀐다.사람, 장소, 대상은 지각되고 등록이 되고 선체적으로 구분이 된다. 어떤 이벤트의 원인을 생각할 능력이 없다. 배움에 흥미를 제공해줄 수 있는 호기심의 증거가 없다. 어떤 것의 오리지널 마음의 생산물을 가질 능력이 없다. 생산된 것은 생리적 반사 수준이다. 심리적 의미를 추론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부인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심리적 의미를 무릎의 반사 활동으로 바꾸어 읽는 것과 같다.의미가 없는 분야에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위에 있는 치료의 기술에서 치료사는 특수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대인관계의 압력의 주재를 경험한다.이러한 근거에서 방어 활동의 부재,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투사 동일시에 근거를 둔 대상관계의 부재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제 1 단계의 특징이다. 심리적 의미를 창조할 능력이 없다. 대인관계를 할 능력이 없다. 삶에 의미가 없다. 혼란하다는 의미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을 경험할 능력이 없고 아무 것도 할 능력이 없다.

 이 단계의 특징은 비록 원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강제로 생각하게 하거나 의미를 지각에 연결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가능한 모든 것은 경험하고 생각할 능력을 형성하는 조건을 창조하도록 시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주로 환자의 공격에 가담하기를 자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환자의 투사 동일시의 수혜자로써 봉사하기 위해서 환자 자신의 유용한 생각과 느낌을 공격하는 것에 가담해서는 안된다. 그 때 환자는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능력을 다시 회복하고 얻을 수 있게 된다. 경험이 없는 단계에서 치료사의 역할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은 가상에 근거를 둔다.

 경험이 없는 제 1 단계의 기간에는 완전히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갈등, 소망 사이에 전쟁이 서로가 똑 같이 바뀜을 의미한다. 제 1 단계에서 힘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압도적으로 기울어져야 한다. 현실의 미움 쪽으로 기울어져야 한다. 경험이 없는 소망은 갈등이 없는 상황이 된다. 치료 뼈대의 지속적 유지가 환자의 눈에 띄게 되고 제 2 단계에서 환자에 반응을 이끌어낸다. 제 1 단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경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은 남아 있다. 의미와 소망 조직이 경험을 하지 않으려는 상황에 접근해서 유지되고 있다. 환자가 생각하게 만들려는 조건을 치료 하려는 노력에서 분석가는 자신이 치료 세트에서 생각할 수 잇는 가능성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1) 안전, 안정을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2) 경험이 없는 현실을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로 하여금 어떤 적당한 행동을 하라고 치료에서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행동을 장려해서 긴장을 방출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3) 오히려 생각의 발달을 장려해야 한다.

4) 자신의 무의식적 적대 감정을 허용해준다. 능동적 치료에 참가함으로써 의미 없는 환자의 상황에 두려움을 재연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 속에서 적대적 해석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삶이 두렵다,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숨기고 잇다." 환자가 할 수 없는 생각을 하도록 끝임 없이 요구를 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환자로 하여금 느끼도록 요구하라, 환자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하고 있는 것을 왜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원인이 되는 생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감정 경험을 구분하게 하는 것이다. 경험이 없는 단계는 갈등이 없는 것을 나타낸다. 마음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나타낸다.

 치료사가 환자의 생각과 경험의 파괴적 공격에 참가하는 것을 억제할 때 환자의 투사 동일시를 수용하게 된다. 이것이 일어나게 되면 환자는 일시적으로 양면 공격을 경험의 영역으로 만들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공격의 시도가 갈등을 등장하게 만들고 그 갈등이 투사 동일시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제 2 단계: 투사 동일시의 단계

오가덴(Ogden, 1994)은 비용(Bion)의 투사 동일시의 개념을 도입해서 제 2 단계를 다름과 같이 설명을 한다. 유아가 출생 후에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단계에서 유아의 스트레스를 엄마가 흡수를 해서 이것을 유아가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든 후에 다시 유아에게 되돌려주어서 유아가 이 스트레스를 입사하게 만들어주서 마음의 기능이 생겨나게 도와주는 것이다.

 치료사는 환자의 스트레스 즉 고통을 흡수해서 이것을 소화해서 환자가 이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다시 환자에게 되돌려주어서 환자의 마음의 기능이 되살아나게 도와주는 것이다. 환자의 소화되지 않는 감각적 데이트를 치료사가 이것을 흡수해서 소화해서 이것을 환자가 소화할 수 있게 되돌려주어서 환자가 이것을 입사하게 하여 심리적 기능을 다시 일으켜 세우게 도와주는 것이다.

 환자는 소화되지 않는 감각적 데이트를 추방해서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치료사가 흡수해서 소화한 다음에 다시 되돌려주어 환자가 소화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비용(Bion)은 이 가설을 엄마가 유아의 원시적 감각 데이터를 처리할 능력할 느력을 배울 수가 있게 된다고 했다. 유아는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게 된다. 엄마가 이러한 투사 동일시의 형태를 컨테이너할 능력이 없으면 생각과 느낌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은 파괴되어 버린다.

 비용(Bion)은 투사 동일시가 엄마와 아기를 연결하는 제 1 차 형태로 보았다.유아의 투사 동일시를 컨테이너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의 거부는 이 연결에 공격으로 지각된다.엄마의 거부는 유아의 느낌과 지각, 부인의 형태를 띈다. 유아의 투사 동일시를 컨테이너 하기를 엄마가 거부하면 유아의 느낌과 생각을 박탈해 버린다. 유아기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잇는 의미를 박탈해 버린다. 이 연결을 공격하는 엄마는 내면화되어지고 유아 반응의 모델이 된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유아는 이후에 자신의 내면 연결 과정을 공격하게 된다.경험을 창조할 지각과 능력을 파괴시켜 버린다.

  비용(Bion)의 이론을 도입해서 오가덴(Ogden, 1994) 은 생각할 수 없는 욕구를 개발하기 보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투사 동일시의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용(Bion)의 강조는 어떤 세트를 기술하고 그 세트 안에서 경험을 창조할 능력과 생각을 창조할 능력을 공격하는 것으로 엄마와 아기 사이에 제 1 차 연결 즉 투사 동일시를 중재할 마음의 능력을 공격한다. 그러나 투사 동일시는 물리적 도구가 아니다. 대상관계를 동반하는 상상의 세트이다. 여기에서 사고 과정의 공격은 상상의 능력에 대한 공격이다.

 대상과 연결을 형성하고 능력에 공격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 능력의 형성에 간섭을 받게 된다. 투사 동일시의 능력이 증가되는 것이 아니고 간섭을 받게 된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하면 투사 동일시의 능력고 감소한다. 정신분열증이 경험이 없는 상황으로 접근해가면서 상상의 능력이 점진적으로 파괴되어 버린다. 투사 동일시의 핵심이 투사적 상상이 감소되어버림을 오가덴(Ogden, 1994)은 강조한다.

 제 2 단계에서 특징은 환자가 치료사를 응시하고 치료사의 말이나 행동을 복사한다. 치료사의 자셰, 치료사의 손과 발의 움직임, 얼굴 표정, 억양 그리고 목소리의 톤 등을 복사했다. 치료사가 말하는 모든 것을 복사한다. 약 3개월-4개월의 매 치료 회기마다 혹은 일부 치료에서 이런 복사가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결과는 치료사로 하여금 급성으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분석가가 말하고 자세를 취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못함을 분석가가 인식하게 되면서 불편해진다. 치료사는 치료사 자신의 몸과 말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취약하게 노출되어있음을 느낀다. 환자에 의해서 컨트롤 당한다고 정복당한다고 느껴진다. 치료사의 모든 행동과 말을 복사하고 있다느 것을 치료사의 몸과 말을 발가벗겨 버려서 의미를 커뮤니케이션할 능력과 자아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해 버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치료사는 자신의 몸과 말이 먼 곳과 연결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손으로 크고 불합리하고 기계적인 손을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환자의 행동의 집중적인 적대 감정이 치료사를 깜짝 놀라게 한다. 이것이 치료사가 심리적 평행을 얻는데 어려움을 가중 시킨다. 치료사는 스스로 목이 졸림을 느꼈다. 생각하고 관찰할 수 있는 심리적 영역이 박탈됨을 느낀다(Ogden, 1994).

 

 위에서 오가덴(Ogden, 1994)이 제시한 제 2 단계 치료는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가 처음으로 구분화된 경험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특징을 보여주는 갈등적 투사 동일시를 상징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어떤 것이 경험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와 뜻에 대한 환자의 공격으로 증거가 뚜렷하게 된다. 환자의 투사 동일시는 치료사에게 치료와 치료의 기본 룰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치료사 한데서 도발한 것이다.

1) 투사자의 느낌이 집중적이고 고통스러워서 환자 자신이 폭력적이고 자기 파괴로 느껴진게 된다.

2) 투사자는 투사를 받는 사람에게 위험하게 무모하게 침투해서 자아의 일부를 추방 시키는 상상을 하고 있다.

3) 받는 사람에게 가해진 대인관계의 압력이 너무 강해서 상처적인 대인관계에 관계 하도록 강압을 받고 있다.

치료사에게 모방 공격으로 관계를 하고 있는 투사 동일시는 환자가 자신의 의미 없음과 죽음 감각을 제거하려고 시도일 뿐만 아니라 치료사가 환자에게 만들고 있는 공격을 치료사에게 분노해서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폭력적인 투사 동일시는 제 2 단계의 초빈기 부분의 특징이다. 여기에서는 환작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파괴하려는 소망과 분석가의 느낌과 생각을 파괴하려는 소망이 거의 일치함을 불러 일으킨다. 치료사를 이용해서 사고에 유용한 경험을 창조하려는 소망이다(Ogden, 1994).

 위에서 기술한 투사 동일시에서는 치료사가 치료사 자신의 몸과 느낌을 경험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적대적 공격 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 붙여서 다른 투사 동일시와 함께 이 부분은 그것을 가지고 살고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아의 일부를 떼어내어 버리겠다는 노력을 상징한다.

 한편 이런 투사 동일시의 과정에서 치료사에서 어떤 느낌을 일치 세트를 유도하는 행동은 치료사에게 의미 없음의 느낌과 적대 감정의 느낌의 참을 수 없음을 커뮤니케이션 하려는 노력에의해서 동기화된 것이다. 치료사가 느낌을 처리해 주도록 생각할 수 있고 그것으로 살아갈 수 있는 형태도 환자에게 유용하게 만들어달라는 환자로부터 치료사 한데로 치료사 한데서 환자 한데로 자아의 일부가 왔다 갔다 전이될 수 있다. 치료사는 아무 생각도 없는 환자의 소망에 위험한 위협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치료사는 참을 수 없는 자아의 일부에 대한 가치 있는 컨테이너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제 1 단계에 있는 환자는 경험을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 2 단계에서 투사 동일시는 경험을 하려는 환자의 능력이 더 커졌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투사적 상상과 입사적 상상을 형성할 생각의 연결이 충분히 커졌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제 2 단계 초반기에 투사 동일시는 집중적으로 환자의 갈등과 의미 없음과 관계된 느낌 경험이 없음과 관계된 느낌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 1 단계와 대조적이다. 제 1 단계에서는 의미가 없고 경험이 없음을 환자 자신이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제 2 단계에서는 의미 없음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투사 동일시 형태로써 즉각 밖으로 쫓아내어 던져 버리고 있다. 제 2 단계에서 투사 동일시는 눈에 띄는 방어가 되고 있다. 초반기에는 내면의 의미없음에 대한 느낌에 대한 방어이고 후반기에는 생각, 느낌과 지각이 참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방어이다.

 이것이 만성적인 정신분열증로 하여금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공격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유이다. 제 2 단계에서 정신분열증의 갈등에서 힘의 균형이 경험과 생각에 대한 소망 쪽으로 옮겨간다. 그 결과 지금은 정신분열증 환자는 지각을 경험으로 바꾸려고 시도를 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의미의 애착과 상상 활동의 어떤 제한된 형태가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망은 경험하지 않으려고 하는 소망이 계속해서 재연되어지고 있다. 경험되어진 것은 즉각 폭력적인 투사 동일시 형태로 추방되어지고 있다. 투사 동일시와 관계된 생각에 대한 대인관계의 공격의 잔인함이 이 단계에 있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는데 관계된 감정적인 고통스러운 긴장을 설명해주고 있다(Ogden, 1994).

 치료사는 치료 회기 시간에 이러한 음산한 단조로움에 박살이 남을 느낀다.이 모든 것이 투사 동일시를 상징한다. 환자의 의미 없음의 경험과 내면 상황의 경험을 투사 동일시를 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런 환자의 투사 동일시를 치료사가 처리함을 통해서 환자는 느낌의 상황을 조금씩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느낌의 상황이 더욱 더 투사 동일시를 당기게 되고 다룰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제 2 단계 후반기에는 투사 동일시는 집중적으로 애매한 양면성이 줄어든다.참을 수 없는 느낌의 상황을 커뮤니케이션 하려는 노력이 많아지는 것이 특징을 보인다. 투사를 받는 사람의 사고 능력에 대한 파괴 시도가 감소하는 특징을 보인다(Ogden, 1994).

 

제 3 단계: 정신증의 단계

 여기에서 사용하는 정신증이란 용어는 심리적 혼란 상태를 말한다. ego 영역이 희미하거나 혼란된 ego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별히 제 1차 사고 과정에 혼란, 현실 검증 능력에 혼란, 통합 능력에 혼란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정신분열증 성격 조직에서 발달과 조직 형태에 이상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성격 조직에 뼈대 안에서 어떤 조건 하에서 볼 수 있는 심리적 상황의 개념을 말한다(Ogden, 1994).

 제 2 단계 치료가 몇 년 째 흘러가고 나면 제 3 단계 치료에서는 환자는 차단된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환자는 마치 그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려고 투쟁하고 있는 것처럼 치료사에게 보인다. 어떤 것을 말하려고 투쟁을 하다가 그 다음에 멈추고 그 다음에 또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패배 속에서 의자에 푹 주저 앉거나 아니면 치료실 마루 바닥에 누워 버린다. 치료사는 환자가 이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기 어려움을 느낀다.

 환자가 차단되었 때 치료사는 때때로 환자가 처음 말했던 것을 그에게 반복해준다."생각하기 어렵겠지요" 이 단계에서 때때로 환자는 문장을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끊어진다. 그가 어떤 것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환자는 어떤 것을 말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없다. 어떤 것인지 모른다고 한다. 다른 때에는 환자는 깜짝 놀란다. 혼란한다. 이런 혼란 상태에 있을 때 얼마나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는지를 모른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듣고 있는지를 말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환자는 웃는 것은 자신을 조롱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느낀다. 어떤 힘이나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가 자살 하기를 바라고 있다. 모든 사람이 환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느낀다. 그는 절망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생각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고 말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를 공포스럽게 놀라게 한다하고 한다.

 치료사의 휴가나 휴일에 치료 회기가 끊어지면 환자는 청각 환상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청각 환상으로 목소리를 듣지만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치료사와 함께 있을 동안에 환자는 거의 벙어리 상태로 지낸다. 병동의 복도를 수 시간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치료사가 휴가에서 돌아 왔을 때 환자는 덜 혼란하고 환청이 멈출 수 있다. 환자는 치료사가 휴가를 가고 난 후에 공백 기간 동안에 무서운 기간이었다고 말하는 것 이외에는 그 무서운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할 수가 없었다. 혼란해서 목소리를 듣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을 몰랐다. 치료사에게 적대적 분노를 표현한다. "선생님이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압니다(치료사의 책장을 가리키며) 선생님이 정신의학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환자는 침묵으로 남아 있다. 이야기를 하려고 몸무림친다.

 그 다음에 환자는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를 잘 잊어 버린다. 문장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이 기간에 표현되어지는 아이디어들은 항상 적대적인 것이 본질이었다. 이 3 단계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공격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차단하거나 조각나 버린다. 또 투사하거나 괴상하거나 왜곡해 버린다.

 환자는 투사 동일시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의해서 처리되거나 즉각 쫓아내지 않는 생각들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성취를 상징한다. 그러나 차단은 역시 해결되지 않는 아직도 강한 소망을 상징한다. 생각과 경험을 위한 자신의 능력을 파괴하려는 강한 소망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Ogden, 1994). 예를 들어서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로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순수한 정신분석 치료 기법으로 치료를 하고 있는 오가덴(Ogden, 1994)의 한 환자 P군의 제 3 단계의 과정의 기술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그 다음에는 치료 회기 시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담배 재의 일부를 삼키고 축축해진 손가락을 재떨이에 비벼댔다. 치료자는 환자 P군의 이러한 행동에 깜짝 놀라서 환자 P군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몸의 일부가 불타고 있어서 재떨이에 재 빨리 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몸 안에 재가 들어가서 원래 있던 그대로 몸이 필요한 위치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Ogden, 1994).

 제 2 단계에서 환자 P군의 투사 동일시의 성공적인 컨테이너 경험을 통해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갈등의 힘의 균형이 지각을 경험하고 지각을 가지고 살고 싶은 소망 쪽으로 급변했다. 결과적으로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싶은 소망 쪽으로 급변했다. 그러나 지각하고 생각하기 위한 환자 P군의 능력에 대한 오리지날 공격으로 가는 경험은 아직도 공포적으로 남아있따.

 제 3 단계에서 고용된 상징의 타입은 주로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즉 상징(재떨이)이 물건으로 똑 같이 취급되고 있는 것이었다. 재떨이가 몸의 일부로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생각과 느낌이 생생한 물건으로 자아 안의 물건으로 취급되었따. 심리적인 과정은 신체적으로 물건을 다루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서 환자 P군이 재떨이에 재를 떠는 것을 자아의 일부를 상상으로 쫓아내어 추방하는 것을 상징했다. 즉 투사를 구체화 구상화하는 것을 상징한다(Ogden, 1994).

 위에서 제시한 치료 자료에서 환자는 그가 이전에 가졌던 넓은 의미에서의 지각, 느낌과 생각을 컨테이너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사람들이 환자를 죽었으면 하는 고통스럽고 놀라운 생각을 경험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반영한다. 고통스런 경험을 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반사시켜주고 있다. 제 2 단계에서 이와 같은 느낌과 똑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유도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환자는 그러한 느낌의 소유의 고통이 즐거움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가 고통스런 경허에 반응행동을 하는 유형 즉 자신의 마음에 기능을 공격하는 것이 아직도 남아있다.

 자신의 마음의 기능을 공격하는 유형은 지각 생각 투사의 조각 속에서 분명하게 증거로 남아있다. 이러한 조각남의 결과는 내면의 세계와 외면의 세계가 괴상한 왜곡 조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창조한 것이다. 생각과 느낌의 추상적 이미지가 물건처럼 구체화 된 것이다. 지각의 도구에 대한 공격은 즉 경험의 능력에 대한 공격의 일부로 지각 도구에 공격은 현실 검증 능력의 붕괴의 형태를 띄고 있다. 지각의 내용을 전체로 조직을 하고 상상과 현실을 구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통합된다(Ogden, 1994).  

 제 3 단계의 후반부는 변화의 기간이 된다. 그 기간 동안에 환자의 정신증적 경험은 계속된다. 그러나 더 붙여서 정신증 경험의 요소들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조직화 할 수 있고 상징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아의 일부를 태우는 것이고 자아의 일부를 상실하는 상상을 말로써 표현하고 조직하는 능력에서 분명한 증거가 나타났다. 담뱃재를 삼키는 것은 상실한 자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회수하여 원 위치 시키는 상상을 말로 표현할 능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단계는 환자가 말할 수 있는 능력의 발달에 이정표를 상징한다. 제 3 단계에서 대상관계의 질은 제 2 단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서 치료사는 환자의 투사 동일시에 부분적으로 컨테어너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분리된 사람으로써 상실을 두려워하고 애도를 하는 사람으로써 가치가 있다. 치료사 한데서 경험되는 이 느낌은 제 2 단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금은 치료사가 공감적으로 반응할 여백이 있다. 환자의 투사 동일시 속에서 갇혀서 대인관계 상호작용 관계에 의해서 치료사에게 강압되어지는 느낌에 반대해서 공감으로 반응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투사 동일시가 지속되지 못한단는 의미가 아니다.

 제 3 단계의 중요한 유형이 계속되지 않는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 3 단계는 심리적인 대인관계의 장소를 상징한다. 그 속에서 공감은 투사 동일시 동안에 받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동일시의 형태 못지 않게 공감이 중요하다. 제 3 단계에서 치료적인 관계는 많은 면에서 위니코트(Winnicott)가 기술한 엄마와 아기 관계에 비유된다. 발달 단계에서 아기는 혼자서 놀면서 배운다. 제 3 단계에서 환자는 치료사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컨테이너 하기 위해서 투쟁을 한다. 정신적으로 치료사에게 덜 의존하게 된다. 환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제 3 단계에서 환자의 느낌 상황은 이전의 단계 보다 한층 더 공개적으로 갈등적이 된다. 갈등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정신분열증의 갈등에서 반대 소망의 힘은 이전보다 많아진다. 이 중 일부는 환자가 살아있음의 감각을 증가 시킨다. 이 중 일부는 환자가 살아 있음의 감각을 증가 시킨다. 더 붙여서 정신분열증의 갈등의 핵심 관심이 제 1 단계에서 우세하던 경험과 경험하지 않는 것에서 제 2 단계인 생각하려는 것과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바뀐다. 제 3 단계에서 조각난 생각의 과정의 단계 동안에 혼란한 상황 속에서는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즉 치료사의 휴가에 대한 환자 P군의 기억은 공포의 시간이었다. 처음에 볼 때는 정신증 경험과 증세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기간이 정신분열증의 갈등의 해결의 단계에서 후반기에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 모순처럼 보인다. 치료적으로 보면 무의식적으로 투사 동일시에 부응하라는 대인관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환자 자신이 모르고 있는 압력이 조용한 오랜 기간이 정신증적 증세의 등장으로 파괴되어 버린다.

 때로 치료사는 치료 과정에서 이러한 후퇴에 때때로 실망을 느낀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경우에 빈버히 병원의 스텝들과 가족구성원들이 이 시점에서 정신증 약물의 처방을 강압한다. 치료에서 이런 후퇴 혹은 침체가 정확하게 말하면 전진, 발전을 의미함을 치료사가 알아야 한다.  환자가 제 1 단계에서처럼 경험에 대한 능력을 파괴시키지 않고 그가 지각하는 것을 경험하려고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 2 단계에서처럼 대인관계에서 생각과 느낌을 즉각 쫓아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환자는 자신의 지각과 느낌과 경험과 원시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려고 절망적으로 시도를 하고 있다. 환자는 상상 속에서 행동 속에서 차단 시키고 조각을 내고 경험된 것을 괴상하게 왜곡 시켜 버린다.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환자는 한층 더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고 이전보다 치료에 적극적이 된다. 비록 정신증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살아있음을 느 끼고 치료에 적극적이 된다(Ogden, 1994).

 제 3 단계에서 환자는 치료사를 인간으로 보게 된다. 추방한 원하지 않는 경험의 일부를 받아주는 사람으로써 본다. 오히려 놀란 경험을 도와주는 원천이 된다.여기에서 주의해야할 점은 제 2 단계에서 환자의 투사 동일시의 성공으로 컨테이너를 한 치료사는 치료사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컨테이너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상징을 감지해야 한다. 환자는 제 3 단계에서 경험의 영역이 넓어진다. 환자는 희미하게 자신의 공포적 느낌과 생각을 컨테이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발달은 자신이 파괴하려는 시도로 연결될 수 있다. 때때로 자살 시도가 성공을 할 수도 있다. 투사가 우세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폭력적 공격을 하게 된다. 자살이나 폭력은 예기치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치료사는 환자가 좋아져 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치료의 이 단계에서는 환자가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그 경험에 의해서 압도된다는 위험이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폭력이나 자살 행동은 이 경험을 종식하려는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Ogden, 1994).

 

제 4 단계: 상징적 사고의 단계

 치료가 2년 혹은 3년 쯤이 되어가면서 환자는 차단의 감소, 환청의 감소, 편집증과 과대 망상의 감소, 혼란한 상황의 감소를 경험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새로운 감각을 가진다. 치료에서 처음의 관계의 특징을 보인다. 증세가 심할 때 늘 보였던 방법으로 자신과 싸우는 것처러 보이지 않는 지금은 한층 더 외부 세계를 알려고 하는 입장에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치료 회기 때 환자는 때때로 치료실 마루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치료 회기가 끝나도록 기다리는 것에 참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때때로 그는 어떤 것에 집착하거나 혹은 어떤 것에 대해서 불안을 보인다. 그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을 때 그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너무 비밀적입니다." 너무 두렵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하는 것에 더 붙여서 그의 느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치료는 한정된 패턴을 띄게 된다. 자주 치료 회기 시간에 분명히 새로운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치료 회기는 몇 주일에서 몇 개월 간에 침묵이 따라올 수 있다. 정신증 증세가 집중화 된다. 치료 회기 때 새로운 형태의 등장이 눈에 띌 수 있다. 환자가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초반기에는 그가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기존 토픽은 환자 자신의 생각이다. 생각이 경험을 이해는데 사용되어지고 있는 사실은 반사 시키는 방법으로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치료사와 환자는 둘 다 놀라고 즐거워한다. 생각은 더 이상 쫓아내서 추방시키거나 불구로 만들어 버려야 하는 위험한 물건으로 보지 않게 된다. 아직도 사고는 그의 생각에 위험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 되고 있다.

  환자 P군은 이 시점에서 그는 자신에 대해서 바보다 어리석다, 정신박약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만약 내가 길거리를 걸어서 내려간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면 어떤 사람들이 함께 가면서 내 눈에 펀치를 날립니다."라고 했ㄷ. 나는 이것을 환자 P군이 자신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공격 소망에 대한 갈등, 느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해석을 했다.이 후에 똑 같은 치료 회기에서 환자 P군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갔다.그는 대인관계의 문제와 책임감에 대해서 투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성장해가면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게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환자 P군의 새로운 상징적 능력은 놀이의 타입에서 반사되어 나타났다. 한 치료 회기 시간에 환자 P군은 치료사인 나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그것이 총인 것처럼 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손들어라" 치료사인 내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 때 P군이 명령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고 하지 말라" P군이 제 2 단계에서 폭력적 도발적인 투사 동일시라는 수단에 의해서 초반기에 표현을 했떤 것들이 지금은 구두어로 드라마적인 놀이로써 상징적으로 표현되어지고 있었다. 그는 전자와 후자에서 둘 다 지각을 다루려고 하거나 생각이 없는 기억을 무가치한 내면 상황을 다루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그것을 치료사인 나 한데로 강압을 함으로써 이 상황을 제거하려는 소망을 상징했다(Ogden, 1994).

 제 4 단계에서 비 구두어로부터 나오는 경험이 구두어로 드라마틱한 놀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재 가동될 수 있다. 환자는 상징적 생각이 나타나는 것을 상징적 사고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자신과 치료사로부터 숨기려고 변장을 시도한다. 오랫동안의 무감각한 기간 다음에 따라온 투명한 치료 회기는 과거에 원시적인 느낌과 반대로 과장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치료실의 마루에 누워있을 동안에 P군의 자만심을 유머스런 효과를 나타냈다. 어떤 것에 대해서 농담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 치료 회기에서 치료사인 내가 "자네가 나에게 잣니이 바보처럼 보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지는군"이라고 말을 했다. 그 때 P군은 "바보가 무슨 의미인데요?"라고 물었다. 부분적으로  P군은 사람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 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러나 1차적으로 그는 자신이 바보여서 그 말의 의미 조차 모른다는 말을 함으로써 반쯤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P군의 말과 행동은 다른 방법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칙적으로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P군은 치료사인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료 환자들에 대한 치료사의 인상을 코멘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P군은 감정적으로 그가 치료사처럼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생각하고 놀이를 하는 능력이 증가되어자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었다. P군이 초반기에 비밀로 했던 상상과 아이디어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가 방금 말했던 것의 의미를 흘러 내보내는 방법을 규칙적으로 선보였다. 예를들어서 한 치료회기 때 그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케네디 우주 센터의 폭력을 상상하면서 보냈다고 했다. 그 다음에 그는 그 아이디어를 노래로써 반복했다. 이런 반복의 타입은 아이디어를 의미 없는소리로 연속으로 감소 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똑 같은 방법으로 여러 번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말의 의미를 흘러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때에는 P군은 어떤 아이디어를 소개하고는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치료사인 내가 그 아이디어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P군이 마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을 했다. 빈번히 P군은 어떤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것을 불합리한 지점까지 정교화 했다. 정교화해서 불합리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거의 완전히 상실해 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노래로 반복하는 것과 아이디어를 흘러 내 보내는 것과 불합리한 정교화는 모두가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의미는 그 의미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벗겨 버리는 것에 이바지했다.

 P군이 그의 경험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는 무가치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많은 실수에 직면해서 패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별히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어떤 아이디어를 가질 수 없는 능력에 대한 절망감이었다. 어떻게 그가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에 대한 절망감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어야 할지를 모르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었다. 그는 만약 뇌가 부서져 버리면 의사가 사람을 도와주기가 얼마나 무기력한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의사들은 비록 뇌를 주어 모아서 환자에게 되돌려준다고 해도 뇌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슨 생각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환자를 도와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P군은 심리치료가 어떤 것을 주어 모아서 환자에게 되돌려준다는 아이디어를 이미지화 하기 위해서 상징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만약에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모른다면 공허한 승리가 될 뿐이었다(Ogden, 1994).

 

 내용이 없는 형태의 테마는 이 치료 기간에 반복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P군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볼 수가 없는데도 수년 동안 결혼을 해서 같이 살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중 한 치료 회기에서 P군이 생각하기가 어려움을 이야기 했다. "나는 느낌에 발목이 붙잡혀 있습니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밀어내고 무시해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책임감이 없는 행동입니다. 나는 내 자신이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치료사인 나는 이것을 환자 P군이 자신이 그것을 모르게 만들어서 즉 생각을 억압하거나 억제함으로써 자신의 아이디어를 회피하려고 하고 있는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P군은 생각이 무시되어었다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생각 그 자체도 생각이 상징하는 현실도 지워 버릴  수가 없다. 이 과정에서 변화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했다. P군은 날카롭게 살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모르게 만드는 것은 자아가 부과한 제한의 형태임을 알고 있었다.

 한 의미에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다른 의미에서는 위험함을 알고 있었다. 구두 상징에 사용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과 대상관계 수준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극단적으로 연약하고 내부 이벤트와 외부 이벤트에 의해서 쉽게 파괴되어 버린다는 것을 이전의 기술에서 반영되어 나타나있었다. 예를 들어서 치료사로부터 분리, 치료사의 일부로부터 에러, 치료사의 일부에 배신감을 상상 한다. 즉 치룧사가 새 환자와 치료를 하는 것에 대한 질투 등은 퇴행의 촉진제이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갈등을 다루는 과거의 수준으로 퇴행하게 하는 촉진제이다. 청각 환상, 과대 망상, 과대 과장 아이디어, 망상과 혼란 상황 등의 제 3 단계가 빈번히 일어나면서 제 2 단계인 투사 동일시에 거의 의존해 있다. 방어, 커뮤니케이션 유형, 대상관계 타입이 투사 동일시 하나에 의존해 있는 제 2 단계가 빈번하다. 그러나 대상이 서로 바뀌는 제 1 단계의 심리 상황은 재발하지는 않는다. 이 제 3 단계의 마음의 상황의 정리가 불분명한다(Ogden, 1994).

첫 번째 단계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다, 과거에 나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제 1 단계의 특징이다.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가 생각한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즉 생각을 한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그들 사이에 연결을 지을 수가 없다. 그들을 알 수가 없다. 이것이 제 2 단계와 관계하고 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생각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추상적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제 4 단계와 연결된다(Ogden, 1994).

 

시각 환상과 청각 환상을 함께 보이는 정신분열증 환자 O군이 xxx 정신병원에 1개월간 입원을 한 후에 그의 어머니가 인터넷에서 치료자인 필자의 주소를 보고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결을 해서 치료사인 필자에게 1회에 2시간씩 1주일에 3회 치료 회기를 2개월 동안 받다가 다시 1주일에 2회 치료 회를 1년 동안 받은 결과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순수 심리치료 만으로 10개월 만에 환청과 환각이 완전히 사라진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