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oanalysis10.jpg 

 히스테리아(hysteria)는 가르코트 시대에서 등장은 것은 아니었다. 히스테리아는 고대 시대에 이미 존재했다. 역사가들은 인간의 역사를 고대, 중세, 현대로 나누어서 구분을 한다. 고대 시대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로써 기원전 (B.C.) 300년에서 동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시점인 5세기까지를 고대 시대로, 그리고 500년에서 1500년까지를 중세 시대로, 1500년 이후를 현대 시대로 구분을 한다. 일부 학자들은 현대를 다시 세분화 해서 1500년에서 1900년까지를 근대 시대로, 그리고 1900년 이후를 현대 시대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를 후기 현대 시대로 구분을 하고 있다.

고대 시대

 히스테리아(Hysteria)는 병으로써 고대 시대에서부터 존재하였다. 그리스 시대에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에 의해서 이름이 붙여진 병이었다. hyster 는 그리스어로 자궁이라는 뜻이고 i는 그리스어로 병이라는 뜻으로 히포크라테스가 자궁이 몸에 돌아다니면서 병을 일으킨다고 해서 hysteria라고 병명을 붙였다. 자궁은 여성들만이 가진 장기로써 자연히 히스테리아는 여성의 병이었다.

중세 시대

 중세 시대는 기독교 시대로써 기독교의 영향으로 그리스 시대의 마음, 심리라는 용어 즉 pysch라는 용어가 영혼 즉 soul, spirit 등으로 바뀌었다. 히스테리아는 질병에서 이러한 질병을 가진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나쁜 영혼이 몸에 들어와서 생긴 것으로 마녀, 마귀, 귀신, 악령 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었다. 마녀는 귀신에 몸에 들어와서 해꼬지를 한다는 기독교식의 해석으로 귀신이 들린 사람은 불에 태워죽이는 형벌이 가해졌다.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유럽에서는 마녀 사냥(witch craft, witch hunting)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다. 유럽에서 마녀로 낙인이 찍혀서 불에 태워 처형된 사람들이 10만명이 넘었다. 제네바에서는 3개월 만에 200명이 처형되었고 스콧틀랜드에서는 약 3만명이 처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녀 사냥이라는 용어는 지금도 정치 사회학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있다. 억울한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마녀 사냥, 마구잡이식으로 몰아간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근대시대

 마냐 사냥은 16세기, 17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14세기에서 16세기는 르레쌍쓰 시대로 문예부흥의 시대였다. 그리스 로마의 문화의 부흥을 부르짖으면서 이태리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은 무지, 미신, 종교 맹신으로부터 절대 왕권의 시대로 계몽주의 시대로 흘러가면서 사람들이 무지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이성의 시대, 과학의 시대로 변해갔다. 17세기까지는 정신적으로 병든 히스테리아 환자들을 귀신이 들린 사람으로 취급해서 때리거나 고통을 가하거나 고문을 해서 몸에 숨어있는 귀신을 몸 밖으로 도망을 가게 하는 것이 대부분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게 되면 믿는다는 쪽으로 흘러가면서 가스너(Gassner)가 등장하게 되었고 귀신을 쫒아내는 굿을 하는 exorcism은 메즈머(Mesmer)의 등장으로 병을 치료하는 치료법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고대 그리스 시대의 히스테리아 hysteria가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었다. 히스테리아는 여성의 질병으로써 메즈머에 의해서 치료 기법으로 최면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메즈머의 등장은 미신, 마녀, 무지에서 이성, 과학, 질병으로 진화를 하게 되었다.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 exocrist에서 의사의 질병 치료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르코트(Charcot)와 베른헤임(Bernheim)이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현대 시대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가르코트와 베른헤임은 히스테리아의 원인이 심리적인 것임을 밝혀냈다. 프로이드는 히스테이라의 심리적 원인이 근친상간, 강간, 폭력 등과 같은 심리적 상처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증세로 등장하는가?를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게 된 것이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반기에 프로이드는 히스테리아의 치료 기법을 반쪽 치료인 최면학에서 온전한 치료기법인 정신분석으로 바꾸면서 히스테리아의 원인은 근친상간, 강간, 폭력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설명을 하는 유혹이론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은 증명을 할 방법이 없었다. 성인 히스테리아 환자들의 어린 시절의 기억 회복이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증명을 할 수가 없었다. 또한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섹스 윤리 때문에 히스테리아 환자의 부모나 인척의 가해자들이 이것을 환자의 거짓말, 지어낸 상상으로 몰고 감으로써 어린 시절에 일어난 상처가 사실임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또한 히스테리아 환자는 각계 각층에 분포되어있어서 그들의 부모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없게 되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은 처지가 되자 유혹 이론을 접고 어린이들의 상상에 의한 부모들과의 왜곡된 관계로 이론을 발전시켜나갔다. 이것이 오디프스 콤프렉스 이론이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가면서 프로이드의 유혹이론은 제자들에 의해서 포기되었으나 몇몇 제자들에 의해서 유혹 이론은 계속에서 그 맥을 이어나갔다. 항가리의 정신분서학회 회장인 샌도르 프렌치(Sandor Frenczi), 파울 페드론(Paul Fedran) 등이 그들이다. 여기에 제 1차 세계 대전과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의 정신적인 장애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다시 심리적 상처 이론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 대부분의 군 정신과 의사들은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보이는 이상한 행동 들 즉 깜짝깜짝 놀라거나, 몸이 마비되거나, 오줌을 싸거나,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하거나, 악몽을 꾸거나, 헛소리를 하는 것 등에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군인들을 심약한 군인들로 평가를 했다. 전쟁이 무서워서 몸을 사리는 비급한 군인으로 매도를 했다. 군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군인들을 포탄 쇼크를 받은 것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프로이드 밑에서 1년간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에 군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던 미국인 아브라함 가디너(Abraham Kardner)가  전쟁 군인들의 심리적 문제를 연구하면서 그 연구 결과를 1945년에 전쟁 신경증(War Neruosis)이라는 책으로 출판 하면서 군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는 심약한 군인들이 받는 포탄 쇼크를 전쟁 신경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들이 보이는 증세들은 히스테이아 증세와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깜짝깜짝 놀람, 비명을 지르는 것, 불면증, 입맛 상실, 악몽, 비명을 지르는 것, 과도한 긴장, 기억 상실, 꽁꽁 얼어붙는 마비 증세 등은 여성들의 히스테리아 증세가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남자들도 히스테리아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었다.

 20세기 후반기에 베트남 전쟁에서 전쟁 신경증은 많은 정신과 의사들과 정신분석학자들,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들은 전쟁 신경증을 가진 군인들이 심약한 군인들이 아니고 어린시절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로써 열악한 환경에서 그 상체가 재연되는 것임을 밝혀냈다. 전쟁에서 무공 훈장을 받은 용감한 군인들도 장기간 전쟁에 시달리게 되면 전쟁 신경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1980년에 개정된 DSM-Ⅲ (DSM은 미국 정신 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정신장애에 대한 진단과 통계 분류집의 약자로써 미국에서는 10년 마다 한번씩 미국 전역의 이름난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자, 치료 심리학자들이 모여서 사라진 정신장애 혹은 새로 등장한 정신장애들을 분류하고 통계와 진단 분류집을 만들고 있다)에서 히스테리아(hysteria)는 역사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고 그대신에 세부적인 이름인 상처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신체화 장애, 전환 장애, 히스트로닉 성격 장애 등으로 세분화 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