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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자아, 극단적인 자기 중심적이고,

존경과 인정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으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이 없고 흥미가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한 집중적인 질투를 한다

감정에 깊이가 없고 다른 사람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 못 한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버림받거나 실망을 받았을 때

분노와 노여움으로 복수적 소망을 보인다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

--코넬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정신분석학자--

 

 

코호트의 생애

 코호트(Heinz Kohut)는 1913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출생하여 1938년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프로이드와 직접 안면은 없었으나 프로이드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제자들에 의해서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든 날 모자를 눌러쓰고 정거장에 배웅을 나갔던 코호트도 자신의 아버지가 유태인이어서 몇 년 후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서 1940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시카고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1953년에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여 신경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정신분석학, 신경학, 문학에 심취하였고 이후 15년 동안 시카고 의대대학과 시카고 정신분석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1964년과 1965년에 미국 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1965년에서 1973년까지 국제 정신분석학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71년에 자신의 대표작인 "자아 심리학"(psychology of self)을 출판하였습니다.

 1980년에 TIME 잡지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고 제자들에 의해서 프로이드 만큼 우상적 숭배를 받는 인물로 격찬을 받았습니다. 페니실린의 발견 이래 의학계의 가장 큰 발견이 코호트라고 칭찬을 받았고 의학계의 페니실린과 정신 의학계의 코호트로 비교될 만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이라는 거대 조직에 도전하여 자아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조한 사람으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코호트는 195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내면관찰(introspection)을 중요시하는 공감과 정신분석을 강조하였습니다. 심리치료에 새로운 기법을 불어 넣은 칼 로저스(Carl Rogers)의 공감이론을 정신분석에 접목 시켜 인본주의 정신분석학을 창조한 사람입니다. 코호트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공감을 관찰하는 것이 심리학이다 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치료자는 직접 환자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대리적 내면 관찰을 통해서 환자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공감에 의해서 치료자는 환자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그 환자가 어떻게 느끼는가? 를 발견하게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치료자의 훈련된 내면 관찰의 기술을 강조하였습니다. 간접적인 마음의 관찰인 대리 관찰은 대인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대인과의 관계 경험은 내면을 스스로 관찰하여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라고 주장합니다. 대인관계, 다자 관계, 상호관계와 약간 다릅니다. 코호트는 "나"의 경험이 자아 개념의 기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나르시즘의 개념

 나르시즘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우스(Narcissus)의 이야기에서 따 온 것으로 1898년 엘리스(Ellis)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남성 자위행위 연구 보고서에서 심리적 상황의 설명에 사용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에 1910년에 프로이드가 "섹스 이론에 대한 세 논문"에서 나르시즘 이라는 용어를 정신 의학에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신화

 강의 신인 세피수스(Cephisus)가 둘러 싸고 보호하던 숲의 요정인 헤리오프(Heiriope)의 아들 인 나르시우스(Narcissus)가 16세 때 실연당한 남, 여 신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지나가다가 에코(Echo) 요정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에코 요정은 목소리가 아름답고 언변이 뛰어난 신으로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가 알고 제우스를 유혹한 제우스의 첩을 붙잡아 끌고 가던 중에 에코의 말솜씨에 정신이 팔려서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제우스의 첩을 놓치는 바람에 화가 난 헤라는 분노해서 에코를 대신 처벌하게 되었습니다. 헤라의 노여움으로 처벌 받아서 에코는 목소리를 잃고 남의 목소리를 흉내만 내는 메아리(echo)의 신이 되었습니다. 에코는 나르시우스에게 반해서 나르시우스를 따라다니게 되었지만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밖에 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대다가 에코가 따라오는 줄도 모르고 "여기에 누구 없어요?"라고 외쳤을 때 에코는 "여기에"라고 대답하고 나르시우스를 포옹하려고 했으나 "당신이 나와 같이 지내기 보다는 내가 죽은 것이 좋겠다"는 말에 "나와 같이"라고 대답하여 애원을 했습니다만 나르시우스는 사라졌고 에코는 일생을 나르시우스의 사랑을 애걸하며 나르시우스만 찾아 다니면서 목소리를 남겼습니다. 나르시우스의 냉대를 목격한 아르테미스 신이 분노하여 나르시우스를 사랑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나르시우스가 어느 날 거울처럼 맑은 샘물에 다다랐을 때 목이 말라서 샘물을 마시다가 물 속에 비친 아름다운 소년에 취하여 그 소년을 껴안고 키스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물에 비친 모습임을 알고 비친 모습에 도취되어 떠날 줄 몰랐고 그 자리에서 굶어서 죽어갔습니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나르시우스를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에코는 나르시우스가 내는 고통스런 "아" "아" 소리만 흉내 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나르시우스가 죽은 곳에서 꽃이 피어났고 이 꽃을 나르시우스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꽃은 영어로 narcotic flower로 아편 꽃, 혹은 양귀비 꽃으로 불리우며 이 꽃의 꽃 말이 평화, 잠, 죽음입니다. 아편의 마약 중독성을 암시해 주는 꽃입니다. 오늘날 정신분석 학자들은 "자신을 가지고 싶어하는 애통함이 자신을 파괴 시켰지만 자신의 다른 자아가 자신에게 진실되게 남아 있음을 알고 고통을 즐거워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나르시우스의 옹고집 적인 자만, 다른 사람에 대한 거만한 행동, 비 공감적인 적대감정 등을 가진 사람들을 기술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르시즘 학문의 등장

1898년 엘리스(Ellis)가 남성 자위행위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

1910년 프로이드가 나르시즘이라는 용어를 정신 의학에서 처음으로 사용

1911년 프로이드의 제자인 정신분석학자 랭크(Rank)가 정신분석학 논문집에서 "나르시즘"을 소개

1914년 프로이드의 나르시즘에 대한 연구가 출판

1925년 정신분석학자 웰드(Waelder)가 나르시즘 성격장애를 소개

1960년 정신분석 학자인 레이크(Reich)가 나르시즘의 정확한 용어를 정의하였다.

1980년 DSM-111(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진단 분류 지침서 3번째 수정본)에서 나르시즘 성격장애가 공식으로 등장

나르시즘 자아의 형성 과정

 나르시즘적 성격을 가진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일명 왕자병, 공주병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잘난 체하는 성격의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됩니다.

정상적 나르시즘 자아의 발달 과정

 출산 후에 아기는 자신이 엄마와 분리 되어 있는 줄 모릅니다. 7개월-10개월 사이에 엄마의 얼굴을 알아보고 엄마에게 매달리고 낯선 사람을 피하는 낯가리기가 시작됩니다. 이 때 아기는 엄마와 자신이 하나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1세-3세 사이에 나르시즘이 피크가 되는 기간입니다. 아기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아기는 엄마에게 이것을 해달라 저것을 해 달라고 떼를 쓰게 됩니다. 이 시기에 아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기가 원하는 대로 엄마가 다 해 주기 때문에 아기는 자신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코호트는 엄마와 하나된 자아 즉 selfobject로 부릅니다.

 이것은 과대자아 혹은 거품자아입니다. 아기는 1세 정도가 되면 아직도 자신의 욕구를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시기에 엄마는 아기의 욕구를 거울처럼 비춰주어서 아기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 시켜주어야 함을 강조 합니다. 아기는 자신의 욕구를 울음으로 표현합니다.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듣고 엄마는 그 울음이 아기가 똥을 쌌는지, 오줌을 쌌는지, 안기로 싶어서 우는지, 불안해서 우는지, 배고픔 때문에 우는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엄마의 사랑의 눈 빛은 아기의 마음에 전달이 되어 아기의 나르시즘적 즐거움에 참가하게 되고 이것이 나중에 자긍심의 씨앗이 됨을 강조합니다.

 3세 이후에 아기가 자신의 몸을 마스터하는 과정에서 아기는 엄마와 아빠는 마술적으로 안 되는 일이 없는데 자신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최고 적합한 좌절을 경험하게 되면 아기는 참고 견디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 충동을 컨트롤 하는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는 전지전능함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나르시즘이 최하가 됩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과대자아의 거품이 걷히게 됩니다. 엄마와 아기의 하나된 자아가 분리 되기 시작하는 시기 입니다. selfobject가 분리되어 self인 자아(나)와 object인 엄마(너)로 분리 됩니다.

 아기는 점차로 자신을 알아가게 됩니다. 아기는 내가 커서 엄마, 아빠처럼 되고자 합니다.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서 최고"가 되고 "나는 최하"가 됩니다. "부모의 이상화"는 사춘기 때까지 계속됩니다. 엄마, 아빠의 이미지는 아기의 이상화가 됩니다. 거품으로 걷힌 자아는 아기의 야심과 이상적 가치가 됩니다.

 가장 취약한 아기의 자아는 현실적 자아가 됩니다. 3세 - 5세의 과정을 거치면서 아기의 자아 안에서 형태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아가 통합되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의 처벌, 금기가 초자아의 원형으로 나타나면서 여기에 부모의 이상화가 첨가 됩니다. 5세 경에 이르게 되면 현실적 좌절, 규제 등이 초자아에 첨가되어 비로소 초자아가 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초자아와 현실적 자아와 야심과 이상이 하나로 통합되어 자긍심의 핵심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 자긍심은 사춘기 때 자아 주체성으로 제 2의 변화의 기간을 거치게 되면서 비로소 여물어진 자아, 혼자서 결정을 내리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아, 내 몸의 주인인 자아,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자아인 자아 주체성이 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병적인 나르시즘적 자아

 0세 - 5세 사이에 아기의 나르시즘적 자아가 충족되지 못하게 되면 자아의 형태 변화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자아의 형태가 변화되어 통합된 자아가 나타나야 하는데 원시적 형태 그대로 존재하게 됩니다. 엄마가 충분하게 아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거나 너무 과잉 보호로 아기가 최고 접합한 좌절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나르시즘 욕구에 고착이 일어나게 되고 원시적인 나르시즘 욕구는 형태 변화를 거치지 못하고 원형으로 남게 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빈 자리인 이상화 이미지를 찾게 됩니다.

 과장된 자아가 그대로 남아 있게 되어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한 나르시즘 욕구를 스스로 채우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너와 나의 하나된 자아는 너와 나로 분리 되어 분화되지 못하고 하나로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부모의 이상화, 야심, 현실적 자아는 분리되어 분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재 통합되어 새로운 자아의 형태 변화인 초자아, 자아, 야심과 이상으로 변화되지 않고 원시적인 원형인 너와 나의 하나된 덩어리 그대로 남아서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자아를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이상과 현실이 하나로 인식됩니다.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이야기하게 됩니다.

 나르시우스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느낄 수가 없게 됩니다. 자신의 자아를 너무 사랑하여 병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반쪽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자아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어 자신의 반쪽을 사랑하고 있는 줄을 모릅니다.

 결과는 대인관계의 파괴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자아를 너무 사랑하는 병이 됩니다. 인플레 된 자아가 됩니다. 내가 최고가 고착으로 남게 되어 나르시즘 속에서 상처 난 자아를 만족 시키게 됩니다. 끊임없이 이상적인 인물 즉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부모의 이상화를 찾게 됩니다. 그 이상적 인물에 매달리게 되지만 그 인물의 조그만 실수나 단점에 실망하여 가차없이 평가절하로 내동댕이 치게 됩니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상적 인물을 추구하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나르시즘 자아의 특징

1. 빈공간(이상적인 부모 이미지)를 끊임없이 채우려고 한다. 완벽한 이상화 대상을 끝없이 찾는다. 마술적인 힘, 전지전능한 보호를 소망한다.

2. 현실을 거부한다. 이상 속에 산다. 이상과 현실이 혼동 된다(이상=현실)

3. 자아의 큰 형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자아가 조작이 난 자아가 된다. 너와 나가 혼동 된다.(대상=자아)

4. 자신의 결점, 단점을 억압하고 숨긴다. 과대자아, 우월감을 보호하기 위해서 평생을 보낸다. 부모가 보호해주지 못한 "내가 최고"를 내가 보호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자신의 단점, 결점을 비판하면 적이 된다. 관계는 끝이 난다.

6. 대상과 자아를 혼돈해서 대상의 장점을 자아가 흡수하고 대상은 빈 껍질로 남는다. 조금이라도 대상이 허점, 단점을 보이면 가차없이 평가절하 한다. 대상과 감정 철회로 관계는 단절된다. 대상에 대한 분노, 적대심이 대상으로 흘러가서 대상이 파괴될까? 봐서 질투를 방어한 것이 평가절하이다.

7. 외부로부터 칭찬, 찬양, 각광, 찬사로써 자긍심에 에너지를 충당한다. 그러나 외부의 공급이 중단되면 내면은 공허감, 우울함으로 가득차게 된다. 속빈 강정, 富, 美, power에 목말라 있다. 칭찬과 각광을 받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한다. 내면 자아의 만족이 없다.

8. 모든 사람은 "최고인 나를 위해서 존재" 한다. 친구는 이용의 대상이 된다. 모든 사람은 내 똘만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는 끝난다.

9. 공감 능력이 없다. 나르시우스는 에코의 에원에도 눈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사랑을 할 수 없다.

10.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반쪽 자아이다. 나르시우스는 물에 비친 자아의 반쪽을 보고 사랑하며 죽었다.

 

나르시즘 환자와 치료자와의 관계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자의 공감입니다. 치료자가 환자의 교사가 되거나 지도자가 되거나, 환자를 도덕화 하려는 경향은 정신병리가 이해되어지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것임을 경고합니다. 치료자가 환자를 설득하려 들거나 강압적, 억압적으로 해석을 제공하려는 것이나 카리스마적적인 치료적 영웅주의를 경고합니다. 

 대신에 나르시즘 성격장애의 이해를 강조합니다. 치료자가 이상화 전이, 거울 전이를 이해할 것을 요구 합니다. 이상화 전이는 치료자 자신의 억압된 과대망상이 반 전이를 자극하기 때문에 치료자들에게 거부되는 경향이 있고 거울전이는 지루하고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자의 인내심을 강조합니다. 코호트는 치료자가 환자의 어린 시절의 나르시즘을 비치게 해주는 거울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합니다. 환자의 치료 경험에서 환자가 코호트에게 끝없는 요구를 해 왔고 환자가 치료자인 코호트로 하여금 환자가 말한 내용을 반복하도록 요구 했습니다.

 치료자가 그 이상을 넘어가거나 그 이상의 해석을 제공했을 때 환자는 맹렬하게 분노로 반응했습니다. 오디팔 근거의 해석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치료자로 하여금 거울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코호트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환자는 잃어버린 마음의 구조를 대체 시키고 있었음을 코호트가 알게 된 것입니다.

 치료자는 환자의 과대 자아를 뚫고 나갈 것 즉 working through를 강조합니다. 환자가 어릴 때 엄마로부터 받지 못한 것을 거울을 통해서 정확하게 "감정적 경험"을 비추어 주어서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는 것이 치료의 주요 핵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 합니다. 엄마의 공감이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고 적합한 좌절이 필요하듯이 좋은 치료 환경 속에서도 치료자의 공감의 조그만 실패는 불가피하게 됩니다.

 치료자의 최선의 공감을 통해서 환자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규제하게 하고 좌절과 불만족에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됩니다. 크다란 좌절은 욕구에 상처를 남기고 그것이 고착이 되어 그것을 충족하려는 불만족한 관계가 대상과의 관계를 제거시키지만 최고 적합한 조그만 좌절은 자신감에 도전을 가하여 오히려 자긍심을 증가 시키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욕구를 증가 시킴으로써 자신감을 기르게 된다고 봅니다.

 치료자와 환자의 하나된 관계가 환자의 거만한 나르시즘적 갈구를 비쳐주고 인정해주고 반응해주어서 환자가 이것을 통합하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나르시즘적 평행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료자의 조용함, 참을성, 공감 능력의 이미지를 빌려오는 것입니다. 외부의 대상에 의해서 욕구를 규제하고 통합하고 적응 기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던 나르시즘적 성격이 치료자와의 하나된 전이의 힘을 빌리게 되면서 자아의 일부로써 외부 대상을 대신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르시즘은 힘을 잃게 되고 자아의 형태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대상인 치료자로부터 자아가 분리되어 사랑하는 대상이 형성되고 이상과 현실의 구분이 생겨나서 새로운 심리구조가 형성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 전이 현상 즉 치료자가 짜증이 나고 거부감을 느끼게 되거나, 환자가 치료자에게 끊임없이 매달리고 보채는 의존적 매달림을 느끼거나, 치료자가 환자를 컨트롤할 수 없음을 느낄 때 치료자는 자신의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이해 부족을 깨닫고 참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을 환자에게 보여주게 됨으로써 환자는 치료자를 동일시하여 치료자처럼 자신의 문제를 소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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